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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사실 이것은 감각의 전략 -정해윤의 그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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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2월 통권 010호 | 사람과 글 人ㆍ文

[제6회] 사실 이것은 감각의 전략 -정해윤의 그림들

이원
시인.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데뷔. 시집으로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등이 있다. 현대시학 작품상,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새를 못 본지 석 달이 넘었어요.
새들은 모두 서랍 안에 있어요.
에이 설마요.
 
 
   세상에 모든 서랍이 열릴 때. 낮도 밤도 아닌 짙은 청색의 시간.
   그리고 불타는 기린.
 
   소리가 사라진 순간이 있다.
   세상에 모든 서랍이 열릴 때. 그리고 새들은 당신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다.
 
   풀이 점점 더 짙어지는 것은 풀이 풀을 가장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눈송이가 점점 더 불어나는 것은 눈이 눈을 가장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람이 가장 잘 이해해서 사람은 사람을 배반하기도 한다. 서랍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서랍은 증식하고 새는 서랍을 가장 잘 이해하지는 못하므로
 
   서랍에 날아온 새들은 이미 날아가고 없는 새들이다.
   이미 날아가고 없는 새들은 방금 서랍으로 날아온 새들이다.
 
   그러므로 새들은 서랍의 꿈의 지시문
 
   당신은 여기 없다
  



Apartment, 144x182cm,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2010

   벽에서 서랍이 열릴 때 새들이 와 있다. 서랍 안에서 나온 것인지 서랍이 열리는 소리에 날아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랍이 열리는 시간에 새들이 있다. 서랍은 서로 서로 조금씩 다르게 열리며, 다 열어 보이지 않는 안과 열어 보인 안의 아래에 어둠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서랍마다 와 있는 새는 같은 박새지만 다 다른 박새다. 서랍의 난간에 앉은 박새는 꼬리 그림자를 바로 밑에 붙여둔다. 전혀 다른 시야를 가진 박새는 마주 보고 있다. 서랍의 안은 비워두고 난간에 앉기를 좋아하는 새들은 퍼덕이지도 않고 지친 기색도 없다. 언제든 날아갈 수 있는 날개는 잊지 않았다는 듯이 따로 또 같이 주로 경계에 있다. 안과 밖, 또는 허공의 안과 허공의 밖. 경계는 서로가 닿은 자리다.

   벽이라는 가설이 세워지면서 서랍이 만들어진다. 벽에게도 미래는 필요하다. 닫힌 서랍은 열리는 벽의 미래다. 
   서랍이 되었으므로 안과 밖이 생겨난다. 밖과 안은 다른 것이 아니다. 밖은 안의 곁이다. 안은 밖의 곁이다. 그러므로 밖을 잡아당기면 안이 나타나는 것이다. 안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밖이 더 커지는 것일 수도 있다. 
   밀로의 베누스에 서랍을 달았던(「서랍 달린 밀로의 베누스」) 달리는 지워진 얼굴과 손에 피칠을 하고 있는, 뼈만 남은 여자의 다리와 가슴에서 서랍이 열리게 했다(「불타는 기린」). 열리고 있는 텅 빈 서랍은 안을 산산이 흩어버리고 싶은 여자의 비명일 수도 있다. 
  



Relation, 130x162cm,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2011

실은 물려 있을 뿐. 부리는 물고 있을 뿐.
 

   새들은 부리로 실을 물고 있다. 대단히 치밀해 보이지만 무계획적으로 엇갈리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저 제 앞에 보이는 실을 물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새들이 실을 한시도 놓칠 수 없는 것은, 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리로 실을 끊는 순간, 단지 한 순간을 잃는 것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놓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알고도 있고 모르고도 있는 새들에게 실은 먹을 수 없는 먹이, 용도가 없는 욕망이 된다. 욕망할 수 없는 욕망을 원하는 새들은 실을 물고 있는 힘으로 팽팽해진다. 실은 물려 있을 뿐. 부리는 물고 있을 뿐. 둘의 전략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서랍의 전략.   

  


Memory on the Way Home, 130x162cm,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2010

하늘이 멀리까지 웅크리고 있다.
물방울이 맺혔고 서랍이 조금씩 열린다.

   벽에서 서랍이 열릴 때 서랍으로 풀들과 나무와 물가가 몰려들었던 것은 세계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세계가 출렁였기 때문. 풀들 사이로 생겨난 것은 길이라기보다는 이미 가버려서 텅 빈 세계의 어떤 적막. 열리고 있는 서랍 안에 하늘은 가파른 곳 직전에 멈춘 시간. 먹구름이나 흰 구름은 자신의 의지였다기보다는 하늘의 의지였다고 내내 항변. 서랍 안의 하늘을 본 나무들이 길 밖에서 그대로 멈춘 것은 하늘과 나눠가진 어떤 기억 때문. 
   서랍을 연 것은 서랍마다 맺힌 물방울. 물방울을 잡아당기면 너머의 길이나 하늘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기억이 올라온다. 물방울은 말랑말랑하고 기억은 딱딱하다. 딱딱해서 더 아프다. 

   서랍에 사람들이 산다. 서랍에 기억이 쌓인다. 사람들은 더러 기억의 유령이 되기도 한다. 벽은 견고하고 사람은 물컹하다. 서랍이 긴 손가락처럼 열리는 시간. 서랍을 잊고 싶어 서랍이 끌려나오는 시간. 서랍이라는, 사람이라는 말이 낯설어지는 시간. 
 




Vessels of Role, 194x260cm,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2010

당신은 어디 쯤에 있습니까
당신은 무엇으로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존재합니까. 당신으로부터 당신으로까지.

   그릇들. 같은 모양의, 크기만 약간씩 다른. 그릇들 안쪽으로부터 대나무가 올라오고 있다. 턱 하고 지팡이 손잡이처럼 기울어져 자연스럽게 옆의 그릇 안으로 들어간다. 그릇들은 닿은 듯 닿지 않는다. 그릇들 사이에는 중력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다. 잎도 없는데 대나무 잎 스치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담겨있는 그늘과 빛이 느껴지지만 보이지는 않는 그릇들 속에서 자라나는 대나무들. 서늘하다. 

   은빛 그릇들. 안에 담긴 것이 따라 나오기 좋게 한쪽에 뾰족한 골짜기가 패인. 조금 어두운 은빛은 우주의 색. 외계의 색. ‘창백한 달’의 색. 그릇은 조금 차갑다. 조금 비장하다. 그러나 조금 가볍기도 하다. 뾰족한 곳까지 마련해두고 있으므로 바닥은 물론 완벽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바닥에 뚫린 곳이 있을 수도 있는 법. 새고 있구나 하고 여긴다면 그릇을 용도로밖에 취급 안한 셈. 그릇의 역할로만 취급한 셈. 바닥에서 싱싱한 대나무가 솟아오를 수도 있는 법. 곧은 대나무가 위를 향해 돌진하고 있어 푸르다고 생각한다면 대나무를 대나무로 보지 못한 셈. 대나무는 보기 좋게 휘어져 옆의 그릇으로 들어가고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는 유형. 휘어지는 대나무가 꼿꼿한 대나무보다 장부 대나무다운 법. 소유의 욕망이 아니라 싱싱하고자 하는 욕망이었거든. 


  

  A Handle of Role, 182x227cm,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2009

당신들은 창백한 달의 색으로 만들어졌다.
그릇에 당신들은 평등하게 담긴다.

   은빛 그릇들이 공중에 떠 있다.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제 무게만큼 떠 있다. 그리고 그릇의 아래에서 단 하나의 우묵한 스푼이 그들을 받치고 있다. 그릇과 스푼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러므로 스푼이 그릇들을 공중에 떠 있게 한다는 물증은 어디에도 없다. 그릇들도 스푼으로 인하여 중력을 벗어난 곳에 존재할 수 있다는 암시를 내비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울고 간 새와/울러 올 새의/적막 사이”(김수영, 「冬麥」)를 뚫고 올라오는 겨울 보리의 푸름처럼, 스푼은 척추를 밖으로 휘면서 이미 그릇들을 떠오르게 하고 있다! 스푼과 그릇들은 이미 서로의 적막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어느 한쪽의 희생이라기보다는 그릇들과 스푼이 함께 만들어가는 풍경이다. 그렇지 않다면 둘 사이에 저렇게 간절한 적막이 들어서 있겠는가. 

  



Friends, 130x162cm, Oriental Water Color on Thick Mulberry Paper, 2009

감각은 태도다.
감각은 형식이다.
감각은 다른 그림이다.

   정해윤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질서정연하다고 느꼈다. 질서정연한데 자유로웠다. 반복되는 서랍, 서랍, 서랍, 그릇, 그릇, 그릇, 새, 새, 새, 대나무, 대나무, 대나무, 길, 길, 길……드라마보다는 차분함이, 차분함에는 일정한 주파수 같은 것이 감지되었는데, 그 안에서 해방의 이미지를 느꼈다. 새를 한 마리도 날아가지 않게 하면서 보여주는 시공간의 확장.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점점 가득해지는 세계. 서랍과 새가, 그릇과 대나무가 만나게 하는 정해윤의 ‘지평 전략’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화면 분할 하나만 보더라도 서양화의 느낌이 강한 그의 그림은 서양화가 아닌 동양화의 재료들로 작업을 한 것이다. 현대적 이미지를 동양화로 구현해내는 것. 아니 좀 더 자세히 보면 이질적인 대상들(동양화에서 자주 다루는 대상들과 서양화에서 주로 다루는 대상들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하게 만든다)이 나뉘지 않고, 더 나아가 평등하게 함께 하게 하는 것. 이것이 정해윤 감각의 전략인 셈이다. 

   한국적인 소나무와 전통적인 문갑의 손잡이가 있고 유령의 이미지가 깃든 바위가 있고 새들이 있다. 서랍의 안과 밖에는 금빛 대나무가 들어서 있고 서랍에서는 안개가 피어오르고 난간에는 구체관절인형을 닮은 형상 둘이 있는 작품(「Friends」). 개별적으로 보면 어색할 수 있는 사물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은, 동양화에서 가장 먼 곳에서 가장 동양화다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정해윤이 다른 감각을 원하기 때문이다. 

   감각은 느낌이다. 감각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기 이전에 닿는 것이다. 보이지 않게 열어 보인 것을 본 것이다. 그러므로 감각이 사라지면 태도도 사라진다. 내용도 형식도 사라진다. 색도 사라진다. 감각은 태도다. 감각은 다른 그림이다. 정해윤은 다른 감각을 붙잡았다. 다른 감각은 특별한 것을 특별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해방의 이미지가 터져 나오고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다른 감각을 한시도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Communication, 182x227cm, Mixed Medium on Thick Mulberry Paper, 2011

   손을 머리에 대고 있기도 하고 어둠을 향해 손짓도 해본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형상에게 손을 내밀고 있기도 하다. 다른 구석에서 두 손을 모으고 질문의 방식으로 서 있는 형상도 있다. 익명의 이들이 현대인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새들은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도 하고 이들에게는 무심한 듯도 하다. 여전히 서랍은 열리고 있으나 안개와도 같은 이곳은 다름 아닌, 누구나가 되는, 그래서 누구도 될 수 없는 곳. 
   많은 그릇들 아래에 놓인 단 하나의 스푼(「A Handle of Role」)에 대해 “주체적이라는 말이 칭찬받을 만한 귀중한 단어로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주체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이다. 스푼은 그 주체가 누구냐는 의문을 던지는 매체다”라는, 서랍이나 그릇에 대한 작업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유형이나 무형에는 각각의 성질에 맞는 장소를 가지고 있고 그 거처가 불분명한 것들 사이에도 나름대로 역할이나 용도에 따라 사용자에 의해 새롭게 또 다른 집합이 될 수 있다”는 정해윤의 글은 그의 작업이 여러 층위를 가진 질문인 동시에 간단한 구조 속으로 여러 겹의 상징이 들어서게 하는 작업임을 알게 해준다. 그의 작업에는 관계, 역할, 질서, 규범 등 개인과 전체에 대한 질문이 들어 있다. 상식을 뒤집을 때 비로소 진정한 주체가 나타난다는, 역할을 벗어날 때 진정한 개인이 드러난다는 것을 그의 그림은 실현해보이고 있다.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김수영은 「팽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썼다. 팽이는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서서 돌고 있”다고. 공통에 속하면서도 공통에 속하지 않는 것이 개인이다.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함몰되지 않기 위하여 공통 속에서 뛰어오르는 힘. 그리하여 공통과 그 너머가 다 보이게 하는 것. 정해윤의 서랍 속으로 새들이 날아온 까닭. 그릇을 뚫고 대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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