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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회] 그러니 '아무말'이 되지 않기를 - "아무말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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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통권 072호 | 사람과 글 人ㆍ文

[제76회] 그러니 '아무말'이 되지 않기를 - "아무말 대잔치"

백지은
문학평론가. 200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평론집 <독자시점>이 있음.





<개그 콘서트 "아무말 대잔치">

 
   ’아무말 대잔치’라는 말은 정말 아무 데나 갖다 붙여도 어울리는 말일까? ’아무’라는 단어에 지시 대상의 무차별성이 포함돼 있으니 모든 말이 다 ’아무말’인 것도 맞겠지만, 그보다는 너무나 많은 말들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차별화되는 말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아서 이런 말도 생겨났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차례씩 ’아무말 대잔치’를 벌였던 자신의 일상적 모습이 부끄럽게 자각되기도 하거니와, 실제 담화에서뿐만 아니라 넷net에서 웹web에서 더 많이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말들이 또한 ’아무말 대잔치’ 중이라고도 하겠다. 이 말은 우선, 불필요한 말, 하나마나한 말, 잡다한 말, 엉뚱한 말 등을 가리키는 것이겠으나, 단순히 수다, 개그 등을 통칭하기도 하고 불편한 상황을 희화화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런 말들이 무해할 때 얘기다.

   취업을 위한 면접을 다녀온 친구에게 면접 잘 보았느냐 물었더니 "잘 못 했어. 아무말 대잔치를 하고 나왔어."라고 답했다면, 이 말은 자기 어필과 관련된 많은 말들을 조리 없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는 뜻이자 자기 어필이 되지 못할 말까지도 분간 없이 하고 말았다는 뜻일 것이다. 또는 면접관의 질문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여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런 때 특정 상황에 알맞은 주제나 요점을 거스르고 만 ’아무말’은 제 자신에게 불이익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그 자체로 해악은 아니다. 그러나, 말의 주제와 맥락을 고의로 끊고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아무말’을 해대는 건 다른 문제다. 뉴스의 앵커 혹은 기자가 정치인, 그것도 대통령 후보에게 사람들이 평소 의문을 품어 왔던 내용을 질문했는데 "오랜만에 만나가지고 좋은 이야기하지 뭘 자꾸 따져 싸요, 거."라고 하는 답변은, ’아무말’ 치고도 해악이다. 대화 상대자에 대한 무례함은 물론이거니와,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입장을 밝혀야 하는 의무를 방기하는 걸 넘어 답변을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말은 차라리 ’막말’일 것이다.
 
   방송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의 "아무말 대잔치"라는 제목의 코너에서 개그맨들이 너도나도 엉뚱한 말, 앞뒤가 안 맞는 말, 예상치 못한 말 등을 난사하는 걸 보면, 말에서 기의(의미)의 연관을 무시하고 기표의 논리로 이어지는 말놀이를 ’아무말’이라고도 하는 것 같다. "오늘 화장 잘 먹었다"라고 말하면서 "꺼억"하고 트림 소리를 내는 식의 개그 말이다. 썰렁 개그도, 아재 개그도, 소박한 유희에서 마무리되는 선에서 ’아무말’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의 표면을 따라 미끄러지면서 자동화된 의미 연쇄를 끊고 뒤집어 새로운 길을 내는 말 놀이의 경우, 그것이 정교해지고 진부한 상식을 비트는 정도가 되면, 때로 그것은 시가 될 수도 있다. "그릇된 것은 죄다 그릇이 되어 있었지/ 철옹성처럼 단단해서/ 섣불리 두드릴 수도,/ 진흙처럼 물러서/ 선선히 발 담글 수도 없었지"(오은, 「질서」 중에서) 이런 문장에서 오래되어 굳어진 것들이 낡은 질서가 되는 것이 꼬집히는 것은 기의의 맥락에서만이 아니라 기표의 흐름에서이기도 하다.
 
   가장 문제적인 ’아무말’은, 의미 연관은 되는 것 같은데 실상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말이다. 소문난 명문(?) 중 하나인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와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문법 오류나 말실수 얘기가 아니라, ’정신 차리고 에너지를 모아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뜻은 간신히 알아들었다 해도 대체 이 말이 무엇을 의미-지시, 현시, 명명, 수행 등등-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얘기다. 이 말은 무엇을 가리키지도, 드러내지도 않으며, 선언하거나 명령하지도 않는다. 즉, 말의 껍데기를 쓰고 있으나 아무 알맹이도 없는, 부정확하고 불명료하고 불분명한 소리일 뿐이란 말인데, 그것도 잘 말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한 결과가 아니라 애초에 그런 소리를 지껄이기를 의도했다는 얘기다.
 
   말의 불확실성을 탓하겠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어떤 소설에서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황정은, 「모자」)라는 문장을 읽고, 어떤 시에서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건 구름. 당신의 지팡이."(김행숙, 「이별의 능력」)라는 구절을 읽는다. 문학적 상징, 비유, 심상 등으로 치환해 설명하려 해도 달리 명쾌해지지 않는 이런 서술들의 어떤 모호함은,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 더 선명할 수는 없는 상태로 정확한 모호함이다. 언제나 뚜렷하고자 하나 완벽히 투명해질 수 없는 언어의 운명을 거슬러, 더 뚜렷해지기 위해 불확정과 불투명을 경유하는 이런 말들의 길과, 불분명하고 부정확한 것을 목적으로 언어의 껍데기만을 이용하려는 ’아무말’의 길을 절대 헷갈릴 수는 없다.
 
   작년에 번역 출간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해리 G. 프랭크퍼트, 이윤 옮김)는 박근혜 정부의 부패와 무능을 표출한, 그야말로 ’아무말 대잔치’에 불과했던 담화(문)들의 홍수 속에서 보다 유효하게 인구에 회자된 책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개소리bullshit’란, ’자기 이익을 위해 상대를 기만할 목적으로 늘어놓는 부정확하고 모호한 진술’로서, 진실에 반하는 말인 거짓말보다도 더 진실에 무관심한 악질의 말이다.1) ’아무말’이 개소리가 되는 것 역시 진실에의 무관심 탓으로 여길 수 있을 테지만, 어떤 ’아무말’은 단지 무관심할 뿐이 아니라 진실이 드러나는 배경과 맥락을 적극적으로 흐리거나 뭉개버림으로써 진실을 함정에 밀어 넣고 진실에 대한 요구마저 봉쇄해버린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아무말’들이 공적(公的)으로 넘쳐나는 시기를 맞았다. "반부패 재벌 개혁", "튼튼한 자강 안보", "교육, 과학기술, 창업혁명", "강한 대한민국", "창업하고 싶은 나라, 공정한 시장 경제", "모두를 위한 양성평등" 등등의 슬로건이 길목마다 눈앞을 가로막는다. 이것들이 ’아무말 대잔치’였던 건 아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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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www.huffingtonpost.kr/sehoi-park/story_b_12976628.html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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