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버지는 일곱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전방(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역전(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미수금(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애인(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점(占) 치는 노인과 변통(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 날」(『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문학과지성사, 1980) 전문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시의 마지막 행에 배치된 이 문장은 앞서 17행에 걸쳐 장황하게 서술한 일상의 갖가지 사건들이 의미하는 바를 선명히 드러낸다. 이 시는 하루 동안 ‘나’가 직간접적으로 만나거나 상상한 사람들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두서없이 줄줄이 나열한다. 표면상으로 시의 서술 방식은 시간의 순서와 공간의 이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이 ‘나’의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다양한 사람과 사건 들이 긴밀한 소통과 필연성 없이 파편적으로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전방(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없었다”라는 진술은 완벽한 반어이며, 결코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시를 읽어내려 갈수록 또렷이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한 줄의 결론을 말하기 위해 이 시는 다양한 사람들을 동원(예시)한다. 아버지, 여동생, 어머니, 나, 역전의 창녀들, 창녀가 될 애들과 그 애들의 어린 동생, 아버지 거래처의 사장, 여동생의 애인, 부츠 신은 멋진 여자,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 집 허무는 사내들, 새점 치는 노인, 몇 건의 교통사고로 죽은 몇 사람 등등. 병들었는데 아프지 않다는 점에서 ‘나’의 가족과 모르는 타인들은 구별되지 않는다. ‘나’는 같은 병을 앓고 잃는 가족과 타인들에게 똑같이 담담하고 냉정한 시선을 보낸다. 병들었는데 아프지 않은 동병(同病)의 환자들이 밀집해 있는 공동체, 공동체라고 할 수 없는 이 부실한 공동체에서 ‘나’ 또한 예외적인 존재는 아니다.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책임감도 성실성도 없는 구성원들에 의해 굴러가는 신문사가 병든 세상을 고발하고 자극하는 열린 통로의 역할을 할 리 없다.
이토록 무사하고 완벽한 세상에서 우리는 모두 동병(同病)을 앓고 있지만, 상련(相憐)하지 않는다. “아프지 않”기에 병을 자각할 수 없고, 병을 자각할 수 없기에 자신과 같은 병자인 타인과 소통하고 서로 연민할(사랑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동병이나 상련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각기 흩어져 살아가는 도시의 일상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도시의 사람들은 돈을 매개로 해서만 “변통(變通)의 다정함”을 발휘하고, 아무도 타인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으며, ‘나’의 무심한 고백에서 보듯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기도 한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광적인 격변기였던 1970년대를 통과하며 이성복은 ‘자각 증상 없는 병’이 우리 모두를 강타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놓는다. 한국 시단의 대표적인 미학주의자로 알려진 이성복의 시적 출발이 병든 현실에 대한 극도로 예민한 촉각이었음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그 날’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는가. 어쩌면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것은 아닌가. 지금 아프지 않다면, 자신이 병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