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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국가들-미국(2): ‘아메리칸 드림’에서 ‘이태원 살인사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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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통권 072호 | 사람과 글 人ㆍ文

[제12회] 국가들-미국(2): ‘아메리칸 드림’에서 ‘이태원 살인사건’까지

박유희
고려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부교수.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현대소설의 수사학을 연구하여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에 『동아일보』신춘문예 영화평론에 당선되면서 연구의 범위를 영화로 확장하여, 지금은 영화를 중심으로 서사 장르와 수사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로는 『디지털 시대의 서사와 매체』, 『서사의 숲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다』 등이 있다.

 

   1. <이태원 살인사건>이 남긴 것

   2017년 1월25일 대한민국 재판부는 아서 존 패터슨이라는 미국인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다. 20년 전 그가 17세 청소년일 때 저지른 살인죄에 대한 뒤늦은 판결이었다. 
   1997년 4월3일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23살이었던 대학생이 흉기에 찔려 잔혹하게 살해된 것이었다. 이 사건의 용의자로 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아서 패터슨과 그의 친구인 재미교포 에드워드 리가 지목되었다. 두 사람 모두 미성년자였는데 재미로 살인을 공모했으며 살해 현장에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칼로 찌른 것은 자신이 아니라며 서로에게 살인죄를 미루고 있었다. 최소한 둘 중 하나는 살인범이라는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검찰의 실수로 인해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주하고 에드워드 리는 대법원에서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풀려나게 된다. 무고하게 죽은 이가 있는데 살인범은 없는 상황, 아니 검찰이 범인을 잡아놓고도 놓쳐버린 상황에서 피해자 가족은 법무부와 외교부에 재수사와 범인 체포를 요청한다. 그러나 정부 당국으로부터 별 도리가 없다는 답변만 받는다. 에드워드 리는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았으니 더 이상 이 사건과 관련한 수사 대상이 아니었고, 미국으로 도망친 패터슨은 소재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 사건은 미제 아닌 미제 사건으로 남은 채 10여 년이 흐른다. 
   그런데 2009년 9월에 이 기묘한 미제 사건을 영화화한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한다. 고(故) 홍기선 감독(1957~2016)이 3년여에 걸쳐 희생자의 유가족, 변호사, 부검의 등 4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모은 자료로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었다. 이는 2008년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이슈가 된 것과 맞물려 이 사건에 대한 세상의 관심을 다시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1) 이에 검찰은 미국 당국에 패터슨의 신병 인도 요청을 하게 되고, 패터슨은 2015년 9월23일에야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만에 패터슨의 살인 혐의가 인정되고 형량이 확정된 것이었다. (홍기선 감독은 이 판결이 내려지기 한 달 전인 2016년 12월에 작고했다.)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미제사건의 해결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그 현실적 의의는 인정되었으나 정작 작품으로서는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개봉 당시 “동어반복으로만 굴러가는 허무한 서사”(이동진), “실제 사건 자체의 아이러니 이상을 담지 못했다”(황진미)는 등의 비판을 받았고, 호의적으로 보려는 이들에게도 그저 평범한 스릴러 장르 영화(“가슴에 감춘 칼로 흥미를 돋우고”-박평식)나 미제로 묻힐 뻔한 실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의미 있는 영화(“잊힌 과거와 살인의 해부”-이용철)로서의 의의를 인정받았을 뿐이다. 현재에도 이 영화에 대한 네티즌 평점은 5~6점대에 머물러 있고, 과거에 실제 사건에 대한 법률적 관심을 가지고 이 영화를 보았던 사람에게는 “반미감정을 부추기고 우리 수사기관의 무능함을 비웃는 영화”2)로 기억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 플롯이나 만듦새가 관습적이어서 진부하든, 실제 사건 이상을 담아내지 못했든, 이 영화는 한국영화가 미국을 재현해 온 역사에서 의미 있는 변곡점을 드러내고 있다. 개봉 당시 홍기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다루고 싶었던 것이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3)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발언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이태원 살인사건이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 이유를 단순히 검찰의 무능이라기보다는 수사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서 조망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검사의 오판 혹은 실수를 가능케 했던 부조리, 맹점, 편견 등을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의도는 이 영화에서 검사를 주인공으로 삼은 데에서부터 드러난다. 여기에서 주인공으로 설정된 박대식 검사(정진영)는 연배로 볼 때 반미의식과 정서가 가장 고조되었던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을 인물이다. 그런데 결국엔 사건 해결에 실패하게 되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사건을 최대한 실제에 근접하게 그림으로써 미국에 대한 1980년대의 인식이 대상화되는 의외의 효과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1980년대 반미의식의 맹점을 노출하는 데로 이어진다. 




   2. 아메리칸 드림에서 반미영화로

   한국영화사에서 미국의 표상은 몇 번의 변곡점을 보여준다. 우선 전회(前回)에서 살펴보았듯이, 해방 이후 1950년대 영화에서는 해방군이자 점령군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양가적 인식이 비교적 숨김없이 표출된다. 그것이 대표적으로 드러난 것이 기지촌의 재현이다. 1950년대에는 <악야>(신상옥, 1952)나 <지옥화>(신상옥, 1958)와 같이 기지촌을 배경으로 ‘양공주’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가 제작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1960년대 초까지는 <오발탄>(유현목, 1961)이나 <혈맥>(김수용, 1963)에서처럼 기지촌이 전면화 되지는 않더라도 전후 사회를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중요한 요소로 노출되곤 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이후 영화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며 한국영화에서 기지촌이 재현되는 경우는 드물어지고, 재현된다 하더라도 미군 병사에 의해 양공주가 구원받는다는 식으로 극화된다.4) 이는 반공주의가 강화되며 반공주의에 위배되는 재현은 금지된 데서 비롯한 현상이었다. 영화 재현에 적용되는 반공주의에는 적(敵)[북한, 공산당]은 절대로 긍정적으로 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물론이고, 남한 사회를 재현할 때 북한의 주장이나 이익에 부합하는 면이 있어서도 안 된다는 금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한 사회를 부정적으로 그리거나 젊은이의 절망을 보여주는 것도 ‘용공’일 수 있었다. 남한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나 젊은이의 우울은 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니 인민군을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비롯해 남한 사회의 문제점을 폭로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모두 대표적인 ‘용공’에 해당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에서 계속 미국을 적대시하며 비판하고 있었으므로 남한에서 미국과 관계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것 또한 주요한 용공 행위였다. 이에 ‘영화계의 계엄령’이라고 불린 ‘<7인의 여포로> 사건’5) 이후 반공주의가 영화의 재현에 우선적인 원칙으로 작용하면서 미국과 관련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한국영화에서 사라져간다. 그리고 1967년부터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이 실시되자 그러한 재현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차단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에서 미국은 꿈의 나라로만 그려진다. 젊은이가 미국 유학을 떠나는 것은 가장 행복한 미래를 보장받는 결말이 되고,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이들은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을 구원한다. <젊은 느티나무>(이성구, 1968)에서와 같이 법적으로 남매이기에 맺어질 수 없는 사랑도 미국에 가면 길이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귀결된다. 그러니 <나무들 비탈에 서다>(최하원, 1968)의 현태(이순재)처럼 미국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젊은이가 그러한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전후 실존’의 문제를 충격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될 수 있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 합작영화들이 제작되며 미국 현지 로케이션이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영화 화면에 미국 도시의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영화들로는 <캐서린의 탈출>(데이빗 리치·장일호, 1973), <황혼의 만하탄>(강범구, 1974), <애수의 샌프란시스코>(정소영, 1975), <캘리포니아 90006>(홍의봉, 1976) 등이 있다. 이 영화의 제목들에는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은 미국의 지명이 들어있는데, 실제 로케이션 장소나 영화 내용과는 관련 없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황혼의 만하탄>은 미국 로케이션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그 장소는 맨하탄이 아니고 로스앤젤레스였으며,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이 가는 곳 또한 로스앤젤레스이다. 그런데 이 영화들에서 주목할 점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황혼의 만하탄>은 한국인 여성과 한국계 미국인의 국제결혼을 다룬 영화인데 주인공이 국내에서 꿈꿨던 것과는 다른 미국 생활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보여준다. 또한 <캘리포니아 90006>에서는 미국 불법체류자들이 주인공인데, 불법체류를 위한 위장결혼까지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깊고 푸른 밤>(배창호, 1984)에 8년이나 앞서는 영화다. 남한영화에 나타난 미국의 표상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오영숙은 1970년을 전후로 하여 혈맹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대미의식에 미묘한 변화가 생기면서 미군을 부정적으로 재현하는 돌출적인 영화가 출현했다고 말한다.6) 1960년대 말 이후 민족주의를 앞세운 독재체제가 강화되어갔고 197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그로 인한 사회적 균열 또한 커져갔다는 것을 고려하면, 1970년대 중후반에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폭로하는 영화가 한편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그러한 균열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부정적 재현이 본격화되는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이다. 박정희 독재가 무너지고 민주화의 기운이 고조되며 근 20년 동안 지속되었던 재현의 금기와 억압 또한 풀려나갔다. 또한 미국의 승인 내지 공조 없이는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이 일어날 수 없었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반미 정서가 끓어올랐다. 여기에 영화계에서는 미국 UIP 영화 직배가 예고되고 이에 대한 대대적인 반대 투쟁이 일어난 것도 반미 정서를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 이에 그 간 억압 받았던 재현 욕망이 터져 나오며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 시기 미국 재현에서 주류를 형성한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허구성에 대한 폭로였다. 유형이나 결의 차이는 있으나, 1980년대 주요 작품에 해당하는 <깊고 푸른 밤>(배창호, 1984), <무릎과 무릎 사이>(이장호, 1984), <아메리카 아메리카>(장길수, 1988), <칠수와 만수>(박광수, 1988),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장길수, 1989), <오! 꿈의 나라>(이은·장동홍·장윤현, 1989) 등이 모두 반미 경향의 영화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다.7)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에도 계속되어 <은마는 오지 않는다>(장길수, 1991), <이태원 밤하늘엔 미국 달이 뜨는가>(윤삼육, 1991), <웨스턴 에비뉴>(장길수, 1993)와 같은 영화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2000년대 영화 <괴물>(봉준호, 2007)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반미의식과 정서는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다. 


   3. 미국이라는 숙주와 386세대

   영화 <괴물>에서 돌연변이 괴생물체가 한강에서 발생하는 이유는 미군이 독성화학물질을 한강에 무단 방류했기 때문이다.8) 게다가 괴물이 사람들을 해치고 납치하자 최첨단 방역과 의료 기술을 내세우고 등장한 미군은 사람을 구하기보다는 정보를 통제하고 수집하며 자국의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여기에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 ‘괴물 The Monster’이 아니라 ‘숙주 The Host’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숙주(宿主)’란 생물이 기생하는 대상으로 삼는 생물’을 말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바이러스의 숙주로 오인되는 ‘괴물’일 수도 있고, 그러한 괴물의 숙주로 기능하는 ‘한강’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괴물과 접촉한 사람들에게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기 때문에 괴물에게는 바이러스가 없는 것으로 판명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괴물은 숙주가 아닌 셈이다. 한편 한강을 괴물의 숙주로 만든 것은 주한미군이었다는 인과관계를 고려하면, ‘괴물’이라는 돌연변이로 상징되는 병적인 기현상의 숙주는 ‘미국’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바이러스를 조사하고 방역한다는 명분으로 점령군처럼 행동하며, 정작 괴물은 방치한 채 애매한 사람들만 괴롭히는 미국의 행태는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또한 괴물을 잡겠다면서 식수원인 한강에 정체불명의 생화학 무기를 살포하는 것도 그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러스의 숙주는 괴물이 아니라 그들 자신 즉 ‘미국’이라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이렇게 볼 때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는 신랄한 미국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강변에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고 소독을 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음으로써 괴물을 잡겠다는 것인지, 보호하는 것인지 모를 한국의 공권력, 약점을 이용하여 폭리를 취하는 깡패들, 약점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다는 점에서는 깡패와 다름없는 공무원, 미국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언론과 미국의 지식에 따라 움직이는 병원 등은 모두 억울한 피해자들을 죽이면서 오히려 괴물은 살게 하는 숙주로 기능한다. 이러한 제반 요소들로 인해 주인공 박강두(송강호)의 가족은 괴물을 죽일 수도 없고 납치된 딸 현서(고아성)를 구할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미국에 종속되어 있는 한국 사회와 그 사회 내부에 도사린 각종 문제까지 폭로하며 전면적인 비판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9) 요컨대 이 영화는 ‘괴수 오락영화’라는 장르 문법의 이면에서 뿌리 깊은 반미의식을 뚜렷이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미의식은 1980대에 미국이 구원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인식이 대두하고 1990년대를 지나며 우리 민족[남북한 모두]은 냉전의 피해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심화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이전부터 적대시해왔던 소련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한국전쟁의 책임자이자 가해자라는 것이었다. 이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페레스트로이카로 상징되는 탈냉전시대를 맞이하여 남북한만이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게 되면서 우리도 냉전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과 맥을 함께 한다. 또한 탈냉전시대 분단 극복의 의지와 연동되어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되짚어보면 그러한 ‘피해자 vs 가해자’ 논리는 대립항만 ‘남(미국) vs 북(소련)’에서 ‘한민족 vs 강대국(소련과 미국)’으로 바뀐 것일 뿐 여전히 이분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괴물>의 서사도 이분법적으로 전개된다. 현서를 찾으려는 강두 가족의 노력은 미군과 그 주구 노릇을 하는 공권력, 그리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변절하기 일쑤인 엘리트나 전문가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히고 결국 강두 가족이 연대하게 되는 세력은 노숙자뿐이다. 이로써 미군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강자 세력과 강두 가족을 중심으로 한 서민 약자의 대립 구도가 분명해진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 같은 이러한 대립구도는 1980년대 강대국 미국에 대한 약소국으로서의 적대의식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그리고 가족 중 유일하게 전투력을 가진 남자인 삼촌 남일(박해일)이 화염병을 만들어 가지고 돌아와 싸우는 것은 그러한 환기를 한층 부추긴다. 화염병은 1980년대 386운동권 투쟁방식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4. 시대적 개인의 편견, 혹은 이분법의 맹점

   <이태원 살인사건>은 <괴물>에서의 남일과 같은 반미의식과 정서를 지닌 인물이 검사가 되어 ‘이태원 햄버거 살인사건’을 맡은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 박대식 검사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반미의식이 비등하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녔을 연배로,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그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정의감을 지닌 인물이다. 그가 생각하는 약자에는 힘없는 서민, 노동자, 그리고 혼혈아와 같은 사회 주변 계층이 포함된다. 둘째, 검사로서의 소명의식이 강하며 옮고 그름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는 의식이 뚜렷한 인물이다. 셋째, 정의감과 소명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반미의식을 지닌 인물이다. 다시 말해 그의 반미의식은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는 정의감과 대한민국 검사로서의 소명의식이 약소국과 강대국의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문제에 적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정치적 호명으로서의 ‘386세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의식과 정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과 정서가 한 살인사건 앞에서 편견으로 작용하고 결국 결정적인 오판과 실수로 이어지게 된다.
    이 영화는 선량하고 평범해 보이는 대학생 조중필(송중기)이 이태원의 한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이코>(알프레드 히치콕, 1960)의 욕실 신(scene)을 오마주하고 있는 첫 장면에서는 눈[]과 유비되는 하수구로 희생자의 피가 흘러내려가며 사건의 진실이 묻혔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박대식 검사가 현장에 등장할 때 현장은 이미 깨끗이 청소되어 대부분의 단서가 사라진 상태이다. 곧이어 제공되는, 희생자가 버스운전사의 막내이자 외아들이었다는 정보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함께 사건 해결에의 동기를 추동한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곧바로 범인이 등장한다. 미군CID(미군범죄수사대)에서 범인을 체포하여 한국 검찰에 넘긴 것이다. 범인으로 넘겨진 인물은 피어슨이라는 18세의 청소년으로 멕시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혼혈아였다. SOFA 협정을 근거로 자국민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미군이 너무 쉽게 범인을 넘겨주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범인이 혼혈아 하층계급 소년이라는 사실은 박대식 검사의 반미의식과 정의감을 자극한다. 그 결과 그는 피어슨이 CID에서 자백했다는 것부터 CID의 모든 수사기록을 의심하며 수사결과를 전면적으로 뒤집으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이러한 박 검사의 의지에 기름을 부은 것은 피어슨과 함께 살해 현장에 있었던 소년 알렉스였다. 알렉스는 한국인이면서도 미국 국적자로 성장한 부잣집 아들인데 피어슨과 달리 참고인 신분으로만 소환된 것이다. 이에 박 검사는 피어슨이 아닌 알렉스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알렉스를 살인범으로 기소한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386식 반미의식과 사회정의를 향한 소명의식, 그리고 옮고 그름에 대한 이분법적 인식이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현장 검증에서 피어슨을 변호하고, 피어슨과 알렉스를 공범으로 기소하지 그랬느냐는 동료 검사의 충고를 전략적으로 타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화를 낸다. 적과 아군, 죄인과 무고한 자, 정의와 불의가 분명하다는 이분법에 기인한 패착이다. 정작 피어슨과 알렉스는 ‘재미’를 위해 살인을 공모했으므로 그들의 범죄 자체가 이분법만으로는 포획되기 어려운 성격이었음에도 박 검사는 자신의 선의에서 비롯된 편견에 가려 그 잔혹한 놀이구조를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기소는 실패로 끝나고 검찰은 범인 2명을 모두 놓치고 만다. 마지막에 변호사(오광록)를 찾아간 알렉스는 현장에서 범인이 했다는 말(“I’ll show you something cool. Come with me!”)을 웃으면서 던진다. 그리고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척 했던 피어슨은 박 검사 앞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알았다는 것을 들킨다. 이 두 장면을 통해 영화는 누가 진범인지를 관객에게 묻는 것으로 끝난다. (“누가 거짓말하고 있지…”는 이 영화의 홍보 카피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이 물음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의문은 누가 범인 아니라 두 놈 다 범인인데 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느냐(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이분법적 질문을 통해 오히려 1980년대식 이분법적 인식과 대응의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의외의 성취는 시대적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곡진하게 추구했던 만든 이의 태도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카메라라는 제3의 시선이 아니라면 드러날 수 없었던, 다시 말해 영화이기에 가능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태원 살인사건>은 미국 관련 표상의 계보에서 1980년대 이후 주류를 이루었던 인식 틀의 반성을 유발하는 ‘영화적 리얼리즘의 승리’로 재평가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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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태원 살인사건> 정진영 “이유 없는 죽음…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세계일보』, 2009.9.3.; 「죽은 이는 있는데 죽인 이는 없다」, 『한겨레신문』, 2009.9.6.; 「미제사건 뒤의 ‘그림자’ 우리 사회는 투명한가」, 『문화일보』, 2009.9.9; 등 당시의 여론을 보여주는 다수의 기사가 있다. 
2) 고윤기, 「고윤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 이태원 살인사건, 그 20년 만의 결말」, 『CNB Journal』, 제526호, 2017.3.13.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21624)-2017년 4월14일 검색. 
3) 「홍기선 감독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 다루고 싶어”」, 『스타뉴스』, 2009.08.11. 11:56 입력.(
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09081111320426995&type=1&outlink=1) -2017.4.14. 검색.
4) 1960-70년대 한국영화에서 미국 표상이 변화하는 양상과 맥락에 대해서는 오영숙, 「전쟁기억과 죄책감: 냉전기 남한영화의 미국표상과 대중감정-<옥합을 깨뜨릴 때>(김수용, 1971)을 중심으로」, 『영화연구』 63호, 한국영화학회, 2015, 195-224쪽 참고. 
5) 1964년 말 <7인의 여포로>라는 전쟁영화를 연출한 이만희 감독이 인민군을 멋있게 그렸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북한이나 인민군을 재현하는 태도는 급격히 경직되어갔고, 그 이미지는 도식화되었다. 
6) 오영숙이 그러한 영화로 주목한 것은 <옥합을 깨뜨릴 때>(김수용, 1971)이다. 이에 대해서는 오영숙, 앞의 글 참조. 
7) 1980~90년대 한국영화에 나타난 미국 표상에 대해서는 김선엽, 「1980년대 한국영화에 등장한 포스트식민주의적 혼종성」, 『영화연구』 28집, 한국영화학회, 2006; 오영숙, 「탈/냉전기 미국주의의 굴절과 영화표상」, 『한국문학연구』 46집, 87-127쪽 참고.
8) 이는 2000년에 용산 미군기지에서 실제로 일어나던 ‘맥팔랜드 사건’―영안실의 부책임자였던 앨버트 L.맥팔랜드가 한강에 포름알데히드 용액을 무단 방류한 범죄―을 모티브로 삼은 것이었다. 미군기지의 오염이 심하다는 것은 오랫동안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최근에도 환경부의 오염 실태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그 심각함이 객관적 수치로 확인되고 있어서 다시 충격을 주고 있다.-「미군기지 지하수서 발암물질 ‘벤젠’ 최대 160배 초과 검출」, 『연합뉴스』, 2017.4.18.;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4/18/0200000000AKR20170418138 95 1004.HTML?input=1195m (2017년 4월18일 검색)
9) <괴물>에 대한 논의는 졸고, 「추격과 질의의 수사학: 봉준호 영화론」, 『문예연구』 제50호, 문예연구사, 2006;「추격의 수사학, 그 명징성으로의 행보: <괴물>」, 『서사의 숲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다』, 다빈치, 2008, 94-95쪽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참고문헌]
김동식,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미국 또는 미국인의 이미지에 관하여」, 『민족문학사연구』 36집, 민족문학사연구소, 2008.
김선엽, 「1980년대 한국영화에 등장한 포스트식민주의적 혼종성」, 『영화연구』 28집, 한국영화학회, 2006.
박유희, 「추격과 질의의 수사학: 봉준호 영화론」, 『문예연구』 제50호, 문예연구사, 2006.
______, 「추격의 수사학, 그 명징성으로의 행보:<괴물>」, 『서사의 숲에서 한국영화를 바라보다』, 다빈치, 2008.
상허학회 편, 『1950년대 미디어와 미국 표상』, 깊은샘, 2006.
오영숙, 「탈/냉전기 미국주의의 굴절과 영화표상」, 『한국문학연구』 46집,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4.
______, 「전쟁기억과 죄책감: 냉전기 남한영화의 미국표상과 대중감정-<옥합을 깨뜨릴 때>(김수용, 1971)을 중심으로」, 『영화연구』 63호, 한국영화학회, 2015.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http://movie.naver.com)
다음영화(h
ttp://movie.daum.net/main/new
한국영상자료원(
http://www.koreafil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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