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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팩트 폭력 체크 - "팩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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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통권 072호 | 사람과 글 人ㆍ文

[제75회] 팩트 폭력 체크 - "팩트 폭력"

백지은
문학평론가. 200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평론집 <독자시점>이 있음.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 코너: 출처-JTBC 보도 장면>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발표 도중에 팩트 폭력이라는 말을 쓰는 걸 보니 벌써 상용화된 말인가 싶다. 티브이나 인터넷 여기저기서 들어본 적 있었지만 아무 맥락에서 불쑥 들려온 듯한 느낌 때문인지 쓸모없는 잡념이 이어진다. ’팩트 폭력, 대화의 상대자나 제삼자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로써 상대를 비판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라 한다. 논쟁적 상황에서 한쪽의 견해를 뒷받침할 적실한 논거가 제시되었을 때 상대 논객이 처해진 당황스러움을 과장하느라 이런 말도 쓰이는구나 하는 정도로 간단하게 생각하고 말 수도 있다. 오락 예능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내뱉거나 자막으로 처리될 때 이 말은, 얼마 전까진 툭하면 돌직구라는 말로 표현하던 유머, 개그, 독설 상황에 대한 신조 표현 정도로 이해하고 지나가면 그만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쩐지 개운찮은 기분이 남는 것은, ’팩트란 말의 용처가 새삼 의문스러워서가 아닐까 싶다. ’팩트가 표현되었는데 그것이 폭력에 비유될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는 뜻으로 팩트 폭력이란 말이 사용된다지만, 그것은 이를테면 사실의 힘같은 말과 유사하게 쓰이지는 않는 듯하다. 흔한 예로 "너 살 많이 쪘다", "네가 아직 미혼인 것은 결혼을 안 한 게 아니라 못 한 것", "3년 치 통계 상 네가 대학 갈 확률은 매우 낮다" 등의 사례가 언급되곤 하는데, 애초에 명확한 의미를 지시할 목적으로 생겨난 조어가 아니겠으나, 이런 말들을 팩트 폭력이라 할 때 중점이 되는 건 말의 의미에 있어 정확한 사실성이 아니라 말의 의도에 있어 확실하게 지적하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팩트 폭력이란 내용의 사실성보다도 그 말의 의도 혹은 효과가 폭력적일 만큼 일방적이거나 모진 경우들을 부각시키는 용어라 할 수 있다.
 
   ’팩트사실(事實)’이 누구에게나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의견, 판단, 이론, 당위 등과 달리 사실 그 자체는 어떤 의도나 목적의 편향성 없이 중립적으로 존재하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닐까. 각자의 입장과 시각에 갇힌, 인간적 한계를 지닌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사실 그 자체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마주하기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정오(正誤), 우열(愚劣), 호오(好惡) 등의 판단과 규정, 나아가 몰아붙이기나 상처주기 등의 특정 의도의 맥락에 걸린 채 진술된 팩트란 이미 사실 그 자체이기 어려운 것이다. 요컨대 팩트 폭력이라 칭해지는 대부분의 상황은 사실이라고 주장되는 폭력이거나 폭력적인 의견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문제는, 담화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욕망으로 자기의 진술에 일단 팩트라는 단어를 사용/오용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실은 화자의 공격성이나 무례함을 품은 주관적 시각에 불과한 진술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호도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는, 확률 통계 수치를 대며 팩트임을 강조하는 방법으로써 다른 이들의 올바른 판단이나 주장을 정당치 못한 (비사실적) 견해로 몰아붙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간 현실의 어떤 현상도 완전히 맥락 없이 나타난 무의미일 수는 없는 거라면, 반복컨대 우리의 담화 상황 속에서는 어떤 진술이 오직 팩트로서 표출되고 전달되기는 매우 드물고 어려운 일이며, 어떤 팩트도 맥락 없이 의미 있는 것으로서 존중받을 까닭은 없다.
 
   사실과 구별되는 의견, 주장, 상상, 관념 등을 우리는 팩트의 적(), 혹은 사이비 팩트라고 생각하기 쉬울 터인데, 그것들을 아울러 픽션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데 팩트(의 말이)나 픽션(의 말) 어느 쪽이나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면, 언어가 구성하는 어떤 진실 혹은 의미에 대해 양자는 서로 적대적이라기보다 서로 보완적이라고 해야 한다. 진술된 팩트는 언제나 맥락이라는 픽션과 얽혀 있지 않을 수 없으며, 달리 말해 팩트와 픽션은 사실상 분리불가능하다. 정당한 견해, 정확한 판단, 솔직한 지적으로 된 비판에 대해 팩트 폭력이란 말은 별로 안 어울리는 게 아닐까. 비판이란 팩트가 무엇인지 알리는 일이 아니라 어떤 팩트를 있게 한 맥락(이라는 픽션)을 점검하고 심지어 바꾸려는 일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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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의 제목인 팩트 폭력 체크jtbc <뉴스룸>의 한 코너 명 팩트체크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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